지난 2월부터 저는 계속 칭화대 학생식당의 마라샹궈가 엄청 먹고 싶었습니다.
벼르고 벼르다 마침 칭화대 만인식당에 갔을 때는 설 연휴 직전이라 마라샹궈 코너는 휴무에 들어간 상태였고, 그 직후에는 개학을 해서 식사 시간마다 사람이 넘 많아서 먹으러 갈 엄두를 내지 못했습니다.
그러다 며칠 전에 미국인 친구에게 마라샹궈가 먹고 싶다고 했더니, 마라샹궈 대신 숙소 앞 마라탕을 먹으러 가자고 제안을 해왔습니다.
그런데 하필이면 그날 숙소 사장님이 저녁 먹으러 오라고 저희 둘을 집으로 초대하는 바람에 마라탕 마저 먹지 못하게 됐습니다.
이렇게 해서 원래대로 마라샹궈를 꼭 먹어야겠다는 저의 집념은 더욱 강해지고 말았습니다.
중국에 온 뒤로 작년 하반기에는 거의 한달에 한 번 씩 학술대회 발표에 참여했습니다. 그래서 발표문 쓰느라 숙소에서 방콕하는 시간이 많았습니다.
그 와중에도 현지인과 언어 교류를 하기 위해 어렵게 시간 내서 온 중국인데 이래서는 안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적어도 하루에 한 끼는 반드시 현지 친구와 식사를 해야겠다는 다짐을 했습니다.
결심대로 얼마 전에는 칭화대 친구에게 학생식당에서 같이 밥 먹자고 연락을 했습니다.
현지인과 일일 한끼 꼭 식사도 하고, 드디어 마라샹궈도 먹을 수 있다는 생각에 엄청 신이 났었습니다.
친구와는 식당이 가장 붐비는 시간인 6시를 피해 5시반 쯤 만났습니다.
그리고 드디어 마라샹궈가 바로 눈 앞에 나타났습니다.
갖가지 채소, 양고기, 팽이버섯, 목이버섯, 감자, 고구마, 두부 등 여러가지 재료가 준비되어 있고, 그 중에서 먹고 싶은걸 고르면 됩니다.
직원이 알아서 적당량을 덜어 담고, 맨마지막에 무게를 재서 가격을 매깁니다.
그런데 제가 너무 오랜만에 마라샹궈를 영접하는지라 쉬지 않고 계속 재료를 골라댔습니다.
갑자기 직원 아주머니가 도대체 몇 명이 먹을거냐고 저에게 물으셨습니다.
그래서 제가 저 혼자 먹는거라고 대답했더니 이미 충분하니 그만 좀 담으라고 하셨습니다.
아직 감자랑 고구마도 담아야 하는데.. 그래도 일단 양고기는 충분히 담았으니 다행입니다.
한국에서 마라탕 집에 가면 양고기가 꽤 비쌌던 기억이 있어서 중국에서 마라탕 먹을 땐 양고기를 제일 먼저 고르는 버릇이 생겼습니다.
영수증을 보니 24.46위안이 나왔습니다. 가격을 보니 재료를 많이 담긴 한 것 같습니다.
평소에 혼자 와서 먹었을 때는 16~18위안 정도 나왔었는데, 그래도 크게 오버되지는 않은 것 같습니다.
참고로 중국 환율은 "위안화1위안=한화170원" 정도입니다. 한국돈으로 환산하면 4,158원 정도 나온 셈이니 완전 저렴합니다.
계산하고나서 받은 이 영수증 겸 번호표를 들고 줄 서 있다가 제 번호를 부르면 음식을 받아오면 됩니다.
아, 한 눈에 봐도 평소보다 양이 훨씬 많은 것 같습니다.
마라샹궈 옆에 있는 마실 것들은 칭화대표 요플레와 식당에서 무료로 제공되는 숭늉(?) 같은 것입니다.
식당에 생수는 따로 없고 저 숭늉 같은 것이 있어서 다들 이걸 마시는 것 같습니다.
그리고 요플레는 중국어로 "쑤완나이(酸奶)"라고 하는데 한국처럼 숟가락으로 떠먹는 개념이 아니라 마시는 형태로 되어 있어서 이렇게 봉지에 들어있는 경우가 많습니다.
칭화대 쑤완나이 가격은 1.8위안 정도입니다.
평소에도 친구가 밥을 빨리 먹어서 속도 맞추기가 힘들었는데, 하필 이날따라 친구가 시킨 음식은 엄청 적고, 제 마라샹궈는 양이 엄청 많아서 저는 거의 마시다시피하면서 밥을 먹었습니다.
어쨌든 드디어 마라샹궈를 영접했으니 대화 중에도 계속 "맛있어!" 감탄사를 연발했습니다.
친구와의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이제 식당에서 나서려고 하는데 메시지가 하나 왔습니다. 어제 숙소 사장님의 초대로 마라탕을 먹지 못한 친구의 메시지였습니다.
메시지 내용은 "저녁 때 마라탕 먹으러 갈래?"
왜인지는 모르겠지만 이상하게 무언가 함께 하려고 할 때마다 오해가 생기고, 일이 꼬여서 성사되지 못하고, 그런 일이 반복해서 생기는 친구가 있습니다.
이 친구도 처음 만났을 때부터 그런 일이 자주 있었습니다.
물론 미국인과 한국인 둘이서 어느 누구의 모국어가 아닌 중국어로 의사소통하다보니 당연히 생길 수도 있는 일이겠지만 처음엔 조금 힘들었습니다.
아침에 제가 지나가는 말로 친구에게 오늘은 "마라샹궈"를 꼭 먹어야겠다고 저 혼자만의 결심을 말했는데, 친구는 그걸 어제 못먹은 "마라탕"을 오늘 먹어야겠다는 걸로 잘못 알아들은 것 같습니다.
그러고는 저녁으로 마라탕 먹으러 가자고 저에게 메시지를 보낸 것입니다.
아무래도 본인이 바쁘다보니 저녁 때 시간이 날지 안 날지 몰라서 아침에 제가 얘기했을 때는 바로 약속을 잡지 못했던 것 같습니다.
아무튼 아침에 제가 한 말에서 비롯된 일이니 차마 거절하지는 못하고 승낙을 해버렸습니다.
아직 소화되지 못한 마라샹궈를 배에 한가득 담은 채로 저는 또 마라탕을 먹으러 갔습니다.
친구에게 이미 마라샹궈를 먹고 온 상태라고는 말하지 못하고 그냥 평소와 다르게 아주 조금만 골라 담았습니다.
그렇게 해서 나온 가격이 15위안!!
지난번에 혼자 먹으러 와서 아무거나 마구 넣었을 땐 20위안이 거뜬히 넘었던 것 같은데 15위안이면 정말 적게 나온 것 같습니다.
마라샹궈와 마찬가지로 준비된 여러 가지 재료 중에서 먹고 싶은걸 바구니에 골라담아 카운터에서 무게를 재고 결제를 합니다.
다만 마라샹궈와 다른 점은 국물의 매운 정도를 선택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웨이웨이라(거의 안 매움)'에서부터 '웨이라(보통 매움)', '마라(매움)' 등까지 있는데, 예전에 뭘 어떻게 주문했는지 너무 짜서 고생했던 기억이 있어서 이번에는 '웨이웨이라'를 주문해봤습니다.
드디어 제가 고른 재료로 요리된 마라탕이 나오고, 맛을 봤는데, 또 짰습니다.
왜일까... 지난번 짰을 때도 '웨이웨이라'를 주문했던걸까... 아마도 저는 같은 실수를 반복한 것 같습니다.
친구가 숟가락 가지러 간 사이 슬쩍 보니 친구 것은 엄청 맛있어 보였습니다. 사진의 왼쪽이 제 것, 오른쪽이 친구 것입니다.
자세히 보니 친구 마라탕에는 햄이나 메추리알, 토마토 같은 것들이 있고, 국물은 '마라'였습니다.
건더기는 모르겠지만 실제로 국물을 맛보니 엄청 맛있었습니다.
반대로 제껀 육류 비슷한 것이 하나도 없고, 온통 채소에 국물도 맵지 않은 것이라서 뭔가 맛이 이상해진 것 같습니다.
참고로 친구 마라탕은 가격이 대략 30위안 정도 나왔던 것 같습니다.
어쨌든 꾸역꾸역 다 먹고 일어나려는데 친구가 2위안 주고 별도로 구입한 땅콩장 소스를 뚜껑조차 열지 않은 것을 발견했습니다.
깜빡하고 안 먹었다고 하면서 친구가 카운터에 가서 마장 소스를 돌려줬습니다. 환불해줄 필요는 없고 그냥 필요 없다고 하면서 카운터 직원에게 줬습니다.
아무리 뚜껑도 개봉하지 않은 새것인 상태라 해도 한 번 손님이 구입했던 건데 직원은 아무 의심 없이 그걸 돌려받았습니다.
아무튼 디저트는 마라탕집 들어오기 전에 옆집 KFC에 사진이 붙어 있던 말차아이스크림으로 결정되었습니다.
마라탕 다 다 먹고 자동 옆집으로 향했습니다. 친구는 감기에 심하게 걸린 상태라 제가 대표로 아이스크림을 사먹겠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친구가 본인은 대단한 사람이라 감기도 대단하게 걸린 것일 뿐이니 아이스크림을 같이 먹겠다고 계속 우겼습니다.
결국 제것과 함께 본인 것도 함께 주문했습니다. 편의상 일단 제가 같이 지불을 했습니다.
제가 주문한 말차아이스크림은 8위안, 친구가 주문한 말차&초콜릿아이스크림은 12위안이었습니다.
그런데 친구가 돈을 줄 생각을 하지 않는다는... 제가 쏜다고 한 적도 없는데 말입니다. (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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